극 펭, 빼어날 수(秀)의 펭수. 10세인 그는 남극에서 태어나 남극유치원을 졸업했다. ‘뽀로로’와 ‘방탄소년단’을 보고 대스타가 되기 위해 한국행을 결심했다. 한국까지 헤엄쳐오는 도중 스위스에서 배운 요들송도 각광받는 주특기다. 또 프리스타일 랩, 비트박스까지 못하는 것이 없다. 


    우여곡절 끝에 ‘EBS 연습생’ 신분이 된 펭수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EBS 소품실 한쪽에 살고 있다. ‘자이언트 펭TV’라는 자신만의 유튜브 채널도 갖고 있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펭수는 ‘구독자 37명’의 초보였지만, 지금은 4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인기 크리에이터다.


    무표정 얼굴, 사백안 눈동자, 귀염성은 찾아볼 수 없는 펭수의 모습은 기존 EBS 어린이 캐릭터의 정석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의 언행 또한 ‘교육방송 EBS 출처’라고 하기에는 다소 선을 넘는 수준이다. 아이들을 위한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 아이들의 삼촌, 이모, 부모들이 펭수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어찌 된 일일까?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이승조 교수는 펭수의 인기 요인을 두 가지 키워드, ‘예능감’과 ‘합리적 개인주의’로 설명했다. 


    펭수는 기막힌 예능감을 소유하고 있다. 최신 유행의 인터넷 밈(internet meme, 유행어, 유행현상)을 사용하는데 탁월하고 라디오 방송에서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라이브를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순발력까지 갖고 있다.


    ‘윙크를 해 달라’는 팬의 짓궂은 요청에 손으로 한쪽 눈을 가린다든가, ‘늘 쓰고 다니는 헤드폰의 브랜드는 뭐냐’는 엉뚱한 질문에 “김명중”(EBS 사장)이라고 답한다. ‘회사 사장님 성함을 함부로 말할 수 있냐’는 지적에는 ‘사장님이랑 편해야지 회사도 잘되는 겁니다’라는 재치 넘치는 답을 내놓는다. 다큐멘터리나 강의처럼 딱딱하고 정숙해야 할 것만 같은 EBS 출신이기에 펭수가 보여주는 예능감은 신선한 ‘갭(차이)’으로 느껴진다. 


    펭수'같은 사원, 채용 하시겠습니까? 물어보니


    펭수의 발언은 어디까지 정해진 것일까? 제작진에 따르면 펭수가 보여줘야 하는 큰 틀의 방향성은 제작진과 사전 합의를 하지만 그 외 말과 행동은 자유롭게 행하도록 하고 있다. 그의 예능감은 철저히 짜인 대본이 아닌 타고난 순발력의 결과인 셈이다. 


    그의 예능감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이 교수는 “펭수는 기존 가치나 체계를 전복하는 화법을 구사한다. 이런 자유로운 개인주의에 성인들마저 매료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더구나 펭수의 이런 개인주의는 얄밉지 않다. 펭수는 기존의 집단적 가치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당차게 ‘개인의 가치’를 주장하지만 이는 합리적 사고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펭수가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에 방송된 ‘EBS 육상대회’ 일명 ‘E육대’ 편을 돌이켜보자. 


    ‘E육대’는 EBS 출신 캐릭터들이 모여 체육대회를 여는 이벤트 코너였다. 비인간팀에 뚝딱이, 뽀로로, 뿡뿡이, 펭수. 인간팀에 번개맨, 짜잔형, ‘보니하니’의 먹니와 당당이 참여했다. 경기 종목으로 육상 개인전, 양궁, 승부차기, 풍선 터트리기, 계주 등이 진행됐다. 인간 대 비인간의 대결이다 보니 ‘무거운 머리’로 경기에 임해야 하는 비인간팀이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펭수는 제작진에게 “이건 기울어진 운동장입니다”라는 항의와 함께 규칙 개정을 요구한다. 불공정을 항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불리한 이들을 배려하는 평등을 이야기한 것이다. 인형캐릭터들의 슬랩스틱 코미디 향연에 그쳤을 ‘E육대’는 펭수의 한 마디로 ‘진정 공정한 경쟁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표를 시청자에게 던졌다.


    또한 ‘자이언트 펭TV’의 ‘SBS 정복기’ 편을 보자. 


    목동 SBS를 방문한 펭수는 배성재 아나운서로부터 ‘더 좋은’ 조건의 이적을 제안받는다. 펭수는 전망 좋고 실내 분수가 있는 목동 SBS 13층에서 ‘개인의 가치’와 ‘집단적 의리’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참치캔’인 줄 알았던 SBS 측 선물이 자세히 보니 ‘닭가슴살캔’임을 확인하고 이내 이들이 자신을 알아주고 아끼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펭수는 자신을 찾다 포기하고 출발하는 EBS의 차량을 뒤쫓아가 세운다. 펭수의 ‘합리적 개인주의’는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가치이자 신구세대가 충돌하는 지점이기도 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펭수 경제학] 펭수의 몸 값은


    펭수의 이런 행동을 이 PD는 “제작진의 잠재적 욕구”라고 표현한다. 그는 “펭수와 ‘당돌하게 행동하거나 기존 권력에 대항하자’는 설정을 따로 합의한 바는 없다. 그렇지만 펭수와 제작진 모두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30대 성인이다. 이들의 공통된 잠재적 욕구가 자연스럽게 펭수의 언행에 반영되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펭수는 누구를 만나든 거침없이 일침을 날리며 청량감을 선사하지만 그의 주요 메시지는 ‘공감과 힐링’이다. 그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 특히 힘듦을 호소하는 이들에게는 ‘힐러’ 역을 자처한다. 애초 펭수는 “힘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다. 안 힘든 분들에게도 웃음을 주고 싶다”며 자신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펭수의 팬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DM(다이렉트 메시지)으로 그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펭수는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답변을 달아주고 있다.


    펭수 신드롬의 미래 


    ‘자이언트 펭TV’ 타이틀곡에는 “남극에선 혼자였지. 남과 다른 덩치… 원래 그래, 특별하면 외로운 별이 되지”라는 가사가 있다. 펭수는 과거 따돌림을 겪은 상처를 갖고 있다. 그는 “외로운 별들이 모이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은 별들이 되는 거 같다. 다 같이 사는 이 지구에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에너지와 이해하고 배려하는 별이 된다면 다들 행복해지지 않을까?”라며 상처받은 마음들을 어루만지고 있다.


    펭수가 인기를 끌면서 한때 ‘펭수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이 급부상했으나 이내 사그라들었다. 팬들 사이에서 펭수는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으니 정체를 궁금해하지도 말자는 여론이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제작진에게 “펭수가 시원한 계절에 인기를 얻어 다행이다. 여름이었다면 안에 있는 분은…”이라는 말로 슬쩍 떠봤으나 “무슨 말씀? 펭수는 펭수다”라고 정색한다. 맞다. 펭수는 수의사가 엑스레이로 인증한 ‘찐 펭귄’이다(자이언트 펭 TV ‘펭수가 알고 싶다’ 편 참조). @스포츠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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